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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잊지맙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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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5월 18일입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42주년이네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사람들은

오랜 독재정치의 끝(10.26 사태)을 맞이하게 되며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할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두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신군부' 세력이 12월 12일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결국 사람만 바뀌고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2.12사태)

신군부는 10.26. 사태와 12.12사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시민들의 기본권은 제한되고 군대의 권한이 강해지는 '비상계엄'을 선언하게 됩니다

(참고로 박정희 대통령도 '비상계엄' 선포 후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80년 3월 시민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상계엄 해제와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됩니다. 그 규모는 무려 15만 명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등은 5월에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북괴남침설을 만들었습니다. 보수 세력이 전쟁 분위기 만들어

상대를 없애는 수법은 오래된 수법이며, 지금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쿠데타 세력은 북괴남침설을 흘리며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내의 반대 세력을 모두 잡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시민들이 저항하자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확대하고

반대 학생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려고 합니다.

 

5월 17일, 진압부대에 쫓기다가 대학생이  숨지면서 첫  사망자가 나오게 됩니다.

어느 한 곳을 본보기 삼아 진압한 후 전국을 평정하려던

신군부는 호남지역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각 대학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5월 18일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확대되자  5 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하게 됩니다.

서울지역의 신군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점령 후 상대 정치인들은 잡고

 전남대학교 앞에서는 학생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충돌하는데,

공수부대는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과잉진압(폭력)을 합니다

 

그리고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격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실탄 사격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고등학생까지 시위에 참여하게 되고,  경찰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의 시민이  크게 다쳤습니다.

21일에는 공수부대가 진단 발포를 하며 시민들을 사격했고 

광주는 고립되며, 광주 이외의 지역에는 친북세력의 시위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광주 시민들은 정보를 알릴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5월 26일에는 계엄군의 진입 작전, 27일에는 무력진압을 통해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163명이 사망하고

166명이 실종, 큰 부상으로 사망한 사람이 101명,

부상자는 3139명입니다.

 

예전에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를 봤었는데, 평소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를 보고 너무 느꼈던 것이 많았습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서로를 믿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힘을 모았습니다.

 

민주주의는 독재가 아닌 서로 배려를 하고 존중해주는 사회입니다.

지금의 민주사회를 만들어준 5.18광주민주화운동

잊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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